도서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요한 볼프강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 '인간은 노력하는한 방황한다.'

빵필 2022. 3. 1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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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대표하는 문호, 괴테의 파우스트

 

괴테의 파우스트는 어린 학생들도 책과 뮤지컬로 접할 만큼 널리 알려진 세계의 역작이다.

그간 프랑스 소설만을 즐겨 읽었던 나는 우연히 이 독일 문학책은 읽은 뒤로 다양한 장르와 국가의 도서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해 많은 친구분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고, 혹시 내가 아이를 낳게 되고 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중고등학생이 되면 함께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성장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개인과 사회와 종교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해주는 교훈적인 책이다.

 

자 그럼! 서론은 여기서 마치고 이제 나의 생각과 책의 줄거리를 차례대로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괴테, 파우스트

 

 

 

'여기에도 사람이 있군.'

1808년 당대 유럽의 지배자 나폴레옹은 괴테를 만난 뒤, 위와 같은 묘한 말을 남겼다.

시대의 영웅이 자신과 동등한 인물로 평가를 내렸다는 사실이야 말로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

 

 

 

 

 

독일인들이 생각하는 괴테, 남산 괴테 인스티튜트

 

남산 괴테 인스티튜트

 

 

괴테에 대한 독일인들의 관심과 동경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일각에서는 괴테가 언제 첫 경험을 했는지도 연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인물과 비교한다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괴테의 저술한 책으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도 있는데 이 책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60여 년에 걸쳐 완성시킨 대작 파우스트까지도 많은 문학도와 희극인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비스마르크가 작게 나뉜 공국을 하나로 통일하기 전까지 당시 독일은 조금씩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함과 동시에 언어의 통합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가 있었으니, 바로 괴테의 소설이다.

독일의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는데 시와 소설만큼 큰 도움이 준 요소는 없을 것이다.

일찍이 셰익스피어가 영국 문학과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괴테는 독일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자 극작가, 정치가, 과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세계 각구에 언어와 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문화원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한국문화원, 미국문화원, 일본문화원 등이 대표적이 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독일 문화원은 괴테의 이름을 따 '괴테 인스티튜트'라고 불린다.

 

 

 

 

 

여러 작품 속의 소재, 인간과 악마의 계약

 

 

 

 

파우스트는 인간과 악마 사이에 성사되는 계약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인간과 악마의 계약은 악마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중세 시절의 문학 작품부터 꾸준하게 등장했다.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악마와의 계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현대작품은 '데스노트' 다.

주인공인 라이토 야가미는 이름만 적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책(일명 데스노트)을 손에 넣어 정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여나간다.

하지만 강력한 힘에는 늘 리스크가 뒤따랐고, 죽이고 싶은 상대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생명의 절반을 바쳐야 한다는 유혹도 늘 존재했다.

 

드라큘라 2014 라는 영화에서도 악마와의 계약이 등장한다.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악마와의 동행을 선택한 데스노트와는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인 왕은 백성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악마와 계약을 한다.

그는 드라큘라의 피를 마심으로써 사흘간 인간의 100명에 가까운 힘을 얻을 수 있었으나, 평생 인간의 피를 갈망해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가질 수 있는 초능력 비해 적은 리스크를 받는 불평등한 악마와의 계약도 존재한다.

일본 애니의 대표작 원피스의 등장인물들은 악마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특별한 능력을 얻는데 반해 수영을 하지 못하는 저주를 받는다.

해적이나 해군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맥주병이 된다니 큰 리스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진을 일으키고 용암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능력을 얻는 대신 수영을 못한다는 것은 타작품에 비해 인자한 악마의 저주를 받는 설정이 아닐까 싶다.

 

 

 




파우스트가 더 특별한 작품인 이유

 

 

 

앞서 악마와의 계약을 다룬 작품들과 괴테의 파우스트 사이에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 것은 바로 파우스트가 힘이 아닌 '인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했다는 부분이다.

보통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강력한 힘을 얻어 세상의 일부를 지배하려고 했던 것에 비해 파우스트의 욕구는 지극히 개인의 갈증 해소를 위한 것이었다.

 

 

 

파우스트와 관련된 아주 좋은 글귀를 한 이웃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식은 섬이고 무지는 바다다. 섬이 커질수록 무지의 해안선은 길어진다.'

 

삶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배움을 위해 인간은 노력한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괴테는 이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괴테는 인간의 욕구를 그려냈기에 파우스트를 명작으로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보통 파우스트의 내용을 이야기할 때, 1부의 줄거리를 언급하며 상징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의 2부는 대중들에게 비교적 덜 언급된다.

나 역시도 2부의 내용들은 머릿속으로 그려내기 어려운 상황들의 연속인지라 인지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인 파우스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

 

 

[1부]

 

부정의 신, 메피스토펠레스는 어느 날 주님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인간이 메뚜기 같다거나 가엾은 존재라는 갖은 비하를 서슴지 않고 하는 메피스토펠레스,

주님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충실한 종 파우스트를 언급하며 인간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

그러자 메피스토펠레스가 답한다.

 

주님, 저와 내기를 하시겠습니까?
나리만 허락하신다면 파우스트를 나리의 손에서 빼앗아 보이겠습니다.
그 녀석을 제가 내 길(부정의 길)로 슬슬 끌어내 보겠습니다.

 

자신감에 찬 메피스토펠리스 (이하 메피스토)는 인간 하나쯤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라면 주님 앞에서 우쭐대지만,

주님은 이 내기에 참여하면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라고 답하며 방황하되 타락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메피스토는 인간 세계에 내려와 삽살개로 변신하여 파우스트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학문을 공부한 파우스트에게 정체를 들키게 되고,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며 악마와의 계약을 제안한다.

그는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인간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쌓고 있기에, 쉽사리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주어 파우스트를 만족시키겠다고 말한다.

 

파우스트여, 이 세상에서 당신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종이 되겠으니,
내기에서 지게 된다면 저 세상 나의 종이 되어주겠는가?

 

파우스트는 아래와 같이 외치며 그의 내기를 받아들인다.

 

그럼 악수하자!
내가 어떤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라고 말한다면 그때는 나를 꽁꽁 묶어도 좋다.
나는 기꺼이 멸망해 가겠다!
시계가 멎고 바늘이 떨어져도 좋다.
나의 생애는 그것으로 끝이 난다!​

 

이렇게 서재에서 나눈 대화를 마지막으로 계약은 성사된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누리되 이 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파우스트가 말한다면 주님과 메피스토의 내기는 메피스토의 승리로 끝이 나고, 파우스트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서재 밖으로 나와 이 둘은 성당에서 아주 아리따운 여성을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가레테'로 파우스트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에게 '여보게 메피스토펠레스, 마르가레테라는 처녀를 내 손에 넣어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네가 정말 신 중에 하나라면 이런 바람쯤은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시험이었다.

메피스토는 마법의 묘약을 만들어 그녀의 어머니를 재우고 파우스트를 젊게 만들어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한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이내 죄책감에 사로잡혀 울부짖게 되는데..

 

무엇이 너를 여기에 데리고 왔는가?
나는 지금 얼마나 깊은 감동에 있는가?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할 참인가?
왜 가슴이 이렇게도 무거운가?

가옆은 파우스트여! 너는 이제 완전히 변해버렸구나
정욕에 못 이겨서 찾아왔는데, 지금은 깨끗한 사랑의 꿈에 녹아 없어질 것만 같구나!

 

메피스토는 파우스트가 마르가레테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그녀의 오빠에게 알린다.

그러자 그의 오빠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창녀 취급하게 되고, 메피스토의 계략에 빠진 마르가레테는 결국 파우스트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죽음에 빠뜨리게 되며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다 죽게 된다.

 

파우스트-마르가레테
마르가레테환영

 

 

[2부]

 

두 번째 장은 궁정에서 왕과 대신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메피스토펠리스가 끼어드는 장면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파우스트를 한순간 성욕의 노예로 만드는 데 성공한 메피스토는 이번에 재물의 향락으로 그를 유혹하기 위한 장소로 유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왕과 축제를 즐기기 위해 술을 사야 하는데 금화가 부족해 파티가 무산될 위기에 쳐해 버렸다.

바로 이때, 궁정의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던 파우스트가 지폐라는 것을 개발하여 임금의 신임을 얻게 된다.

 

파우스트의 능력에 반한 황제는 파우스트 일행에게 신화 속 미녀 헬레나와 파리스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일행은 이 둘의 모습을 재현시키게 되나 도리어 파우스트는 헬레나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되고, 또 한 번의 계략에 빠져 오이포리온이라는 아들도 낳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자식은 비극적으로 죽게 된다.

 

아름다운 여성과의 사랑, 궁정의 호화스러운 삶.

다른 이들이 바라는 모든 것을 경험했으나 파우스트에게 남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비극이며 이제 그에게 삶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미로와 슬픔 그 자체였다.

더 바라는 것이 없어진 파우스트는 자신을 위한 욕구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살겠다는 구체적인 욕심을 갖게 된다.

 

황제를 도와 적을 무찔러 해안에 광활한 영토를 얻은 파우스트는 간척사업을 통해 낙원 같은 나라를 만드는 작업을 실행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비극은 발생한다.

언덕의 오두막에 살던 노부부를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라는 명을 내리지만 메피스토는 그들을 놀라게 해 심장마비로 죽게 만들고 언덕에 떨어진 불씨는 그대로 그들을 태워버리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근심의 유령이 어느 날 찾아와 파우스트의 시력을 빼앗아가버리고 파우스트는 모든 상황을 소리로만 인지하게 된다.

파우스트는 삽으로 땅을 파는 소리와 흙을 나르는 수레 소리를 들으며 간척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실제로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인부들을 시켜 파우스트의 무덤을 파고 있었는데 말이다.

홀로 감격한 파우스트는 최후의 말을 외친다.

 

"나는 순간을 향하여 말하노니,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라고 외치며 인생의 시곗바늘을 멈춘다.

메피스토펠레스와 목숨을 걸고 내기했던 금기어를 말한 것이다.

부정의 신 메피스토가 눈먼 장인 파우스트와 내기에서 이겨봐야 무얼 하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피스토는 파우스트의 혼을 빼앗으려 하는데, 그 순간 하느님이 보낸 천사들이 내려와 사회의 계몽을 위해 노력한 그의 혼을 데려가며 책은 마무리된다.

 

 

 

 

 

파우스트에 대한 해석

 

테파우스트 관련서적과 그림

 

파우스트에 대한 해석은 난해한 내용만큼이나 아주 다양하다.

메피스토에게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반대로 지폐를 찍어내고 간척사업으로 사회의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에 계몽주의적인 느낌을 받았다는 의견도 있다.

 

중간중간 신들이 등장하는 복잡한 에피소드는 미뤄두고 책의 말미에 숨을 거두는 파우스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과연 파우스트는 구원받아야 마땅한 인물인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면 그의 욕정 때문에 죽은 마르가레테와 그의 자식들,

간척사업 때문에 죽은 오두막 부부의 억울함은 누구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까?

더 나은 다수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 발생하는 작은 희생들은 어찌할 것인가?

파우스트를 구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님의 선택을 나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주님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도전하고 노력하기에 겪게 되는 사람들의 방황을 보듬어주고자 괴테가 자신을 작품 속 주님에 투영시켜 던진 위로의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방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주님의 말에는 부정의 의미도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의 노력에 의한 방황으로 삶이 뒤틀려버리는 주변인들의 삶들은 단순히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로는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방황)은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비극을 낳기도 한다.

 

나침반도 여러 번 고개를 흔들어가며 제자리를 잡아가든 인간도 많은 흔들림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겠지만,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저지른 행동이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온다면 제 아무리 순수한 의도의 열정이라도 타당한 행동이라 볼 수 없다.

 

모든 학문을 공부했음에도 갈증을 느끼는 파우스트,

노력하기에 방황할 뿐이라고 말하는 주님,

인간을 타락시키려 노력했으나 마지막 순간에는 실패한 메피스토펠레스.

과연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은 단순한 본능인가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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